
2023년 미드저니 디스코드 채널에 올라왔던 수많은 누리꾼들의 세로 응원 밈. 출처: 미드저니 디스코드
프롬프트는 주문이 아니라 공공 언어다
2023년 3월,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얼룩말 한 마리가 울타리를 부수고 도심으로 뛰쳐나갔다. 이름은 세로. 두 시간 남짓 광진구 주택가를 어슬렁거리던 그 장면은 곧 인터넷 밈이 되어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세로의 탈출을 응원했으니 잡혀가는 모습에 또한 안타까워했다. 이쯤 미드저니(Midjourney)의 디스코드 채널과 트위터 타임라인에는 "세로가 만약 더 멀리 갔다면" 가정을 두고 상상한 풍경들이 쏟아졌다. 광화문 횡단보도를 건너는 세로, 한강 둔치에서 풀을 뜯는 세로, 남산 케이블카 옆을 지나는 세로, 새벽 종로의 포장마차 앞에 멈춰 선 세로. 같은 주제를 두고 누군가는 실사사진풍으로, SF풍으로, 1990년대 잡지 표지처럼 생성된 현실을 불러내는 놀이를 벌였다. 하나의 이미지가 다음 이미지의 프롬프트가 되었고, 그 이미지가 다른 사람의 변주를 끌어내는 장관이 펼쳐졌다.
당시 미드저니는 별도의 인터페이스가 모든 생성이 디스코드 서버 안에서 공개적으로 이뤄졌다. 누군가 입력한 프롬프트가 옆 사람의 화면에 그대로 흘러갔고, 마음에 드는 결과가 보이면 그 문장을 베껴 자기 식으로 고쳐 다시 던졌다. /imagine이라는 한 줄 명령어 뒤에 어떤 카메라 렌즈를 유도했는지, 화가의 이름, 조명 어휘를 어떻게 붙이느냐가 곧 그 만든이의 개성이었다. 프롬프트는 비밀이 아니라 서로 보여주며 다듬는 공동의 레시피였고, 디스코드 채널은 그 자체로 거대한 공방이었다. 세로 이미지의 물결은 생성형 인공지능에 입력하며 뭔가 만들어내는, 프롬프트 기반의 집단 공방의 가장 다정한 순간 가운데 하나였다.
미드저니의 디스코드가 작은 광장이었다면, 이후 더 큰 광장들이 생겼다. 세계 곳곳의 사용자들이 좋은 프롬프트를 모으고 공개하고 포크하고 다시 배포했다. f/prompts.chat는 수백 개의 역할 기반 프롬프트를 CC0로 풀어놓았다(https://github.com/f/awesome-chatgpt-prompts). DAIR.AI의 Prompt Engineering Guide는 기법과 논문, 실습 자료를 MIT 라이선스로 묶어 펴냈다(https://www.promptingguide.ai). Learn Prompting은 프롬프트 교육과 AI 보안을 대중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https://learnprompting.org). HackAPrompt는 50개국 이상에서 모인 수십만 개의 적대적 프롬프트로 모델의 취약성을 드러냈다(https://www.hackaprompt.com). MLCommons의 AILuminate는 AI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한 위험 프롬프트 데이터셋을 공개한 바 있다(https://mlcommons.org/benchmarks/ailuminate/).
거대언어모델은 수십에서 수천억 개의 매개변수와 막대한 전기, 데이터센터, 폐쇄적 학습데이터 위에서 작동한다. 유감이지만 우리는 그 기계의 내부를 보지 못한다. 가중치도, 학습 과정도, 안전 정책도 대부분 기업의 손 안에 있다. 사용자가 이 기계와 만나는 표면은 의외로 작다. 입력창 하나, 그리고 거기에 적는 문장. 처음에 프롬프트는 단순한 질문처럼 보였다. "요약해줘." "번역해줘." "이 글을 고쳐줘." 그러나 사람들은 같은 모델이라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영악하게 알아차렸다. "요약해줘"와 "정책결정자용 1쪽 브리핑으로 이해관계자, 실행위험, 반대논거, 검증 필요 항목을 나누어 요약하라"는 같은 수준의 프롬프트가 아니다. 두 번째 프롬프트는 모델에게 역할과 절차와 판단 기준을 부여한다. 프롬프트는 질문에서 절차로, 절차에서 일종의 자연어 프로그램으로 변했다. 이러한 지식을 어떻게 쌓는 걸까. 공유지 운동에 의해서였다.
공유지(commons) 운동은 본래 토지와 목초지, 어장과 숲에서 시작된 말이다. 누구의 소유도 아니지만 모두가 규칙 안에서 함께 쓰는 자원을 의미한다. 20세기 후반 자유소프트웨어와 오픈소스 운동은 이 개념을 코드의 세계로 옮겨왔다. 리눅스, 위키백과,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는 "지식과 도구는 사유화되기 전에 공통의 것이었다"는 감각을 디지털에서 다시 세웠다. 생성형 AI 시대에 그 흐름이 도착한 자리가 바로 프롬프트다. 모델의 가중치도, 학습 데이터도, GPU 농장도 시민의 손이 닿지 않는다. 그러나 그 거대한 기계 앞에 놓인 입력창 한 칸, 거기에 적는 문장만큼은 여전히 우리 모두의 것이다. 오픈소스 코드 운동이 "읽고 고치고 다시 배포할 자유"를 코드에 부여했다면, 오늘의 프롬프트 운동은 같은 자유를 자연어 유도어에 부여하려 한다. 이 흐름을 하나의 조직된 운동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깃발이나 선언문, 조직은 없다. 대신 "AI를 잘 쓰는 법"을 기업의 유료 강의나 폐쇄형 컨설팅에만 맡기지 않겠다는 공감대가 흐르고 있다. 허가보다 우선 가져가 수정하는 포크(fork)가 앞서고, 기본적으로 같이 실험한다는 분위기가 앞선다. 원리가 없는 원리라는 점에서 아나키즘적인 측면이 있다.
물론 이 세계도 순진하고 순수하지만은 않다. PromptBase는 프롬프트를 사고파는 장터를 열었다(https://promptbase.com). FlowGPT는 허가받지 않은 캐릭터, 봇, 탈옥 문화가 뒤섞인 혼잡한 플랫폼이 되었다(https://flowgpt.com). 오늘날 프롬프트는 커먼즈이면서 동시에 상품이 되었다. 공유지는 곧 장터가 되었고, 장터는 다시 플랫폼의 데이터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드저니의 디스코드도 그 결말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드저니가 별도의 웹 서비스로 옮겨가면서, 공방 같던 디스코드의 풍경은 점점 옅어져 갔다. 더 근본적인 비판도 가능할지 모른다. 사실 프롬프트 공유는 오픈소스 AI같은 기술을 형성하는 문화는 아니다. 모델의 가중치와 학습데이터와 컴퓨트 인프라는 여전히 기업이 쥐고 있다. 프롬프트는 모델의 소유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모델 업데이트 주기 때문에 불안정하다. 사소한 표현, 예시 순서, 줄 바꿈도 모델 버전에 따라 결과가 흔들린다. 오늘 잘 작동한 프롬프트가 내일의 모델에서는 낡은 주문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롬프트 커먼즈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바로 이런 한계 때문에 더 필요하다. 거대한 모델을 우리가 소유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그 모델을 부르는 말과 다루는 절차는 함께 소유해야 한다. 프롬프트는 기계 앞에서 인간이 세우는 레시피들의 모음이다. 무엇을 근거로 답할 것인가. 무엇을 모른다고 말할 것인가. 사람의 판단과 승인을 언제 요구할 것인가. 어떤 집단의 관점을 빠뜨리지 말 것인가. 이런 문장들은 단순한 팁이 아니다. 그것은 기계 사용의 윤리와 절차를 공동으로 세우는 문화적 경험이다. 책임감 있는 프롬프트가 더욱 필요하다. 모델명, 버전, 검증 일자, 실패 사례, 라이선스 등을 명시하고, 노동 현장, 학교, 병원, 지역 언어, 장애 접근성, 시민 권리의 맥락을 담아 작동하려는 프롬프트 말이다. 생성인공지능 모델의 평균값에 쉽게 굴복하지 않고, 모델의 결과값을 엉뚱하게 튀어나가게 하는 프롬프트들이 모색되어야 한다. 프롬프트 커먼즈는 AI 잘 쓰는 꿀팁 모음이 아니라, 인간의 암묵지를 기계 앞에 세우는 공공 언어의 아카이브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기계와 협업을 위해 하네스(Harness)를 채우고 파이프라인(Pipeline)을 구축해 생산성을 높이는 일도 좋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들이 개인 혼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이제 프롬프트의 개념을, 기계를 호기심 있는 태도로 대하며 이런저런 입력을 해보는 광범위한 집단 실험의 방식으로 넓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2026년 6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아트코리아랩에서 ‘오픈 프롬프트 커뮤니티’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자 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오픈’은 완성된 결과물만 자랑스럽게 공개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과정, 실패, 막힘, 시행착오,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고민까지 동료에게 열어두는 태도에 가깝다. ‘프롬프트’ 역시 AI에게 입력하는 명령어 한 줄이 아니다. 그것은 창작자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질문을 조직하는 방식, 기계와 협상하는 방식, 나아가 자신의 감각과 판단을 절차화하는 방식이다. ‘커뮤니티’는 서로 다른 배경과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경험을 공동의 자원으로 삼아 함께 배워가는 자리다.
이 프로그램은 생성인공지능을 특정 툴 사용법으로만 가르치는 교육이 되지 않으려 한다. 물론 미드저니, 챗GPT, 이미지 생성 도구, 텍스트 생성 도구, 코드 기반 창작 도구를 다루게 될 것이다. 핵심은 버튼의 위치나 명령어 목록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왜 그런 질문을 던지는가, 어떤 실패가 반복되는가, 어떤 결과는 왜 그럴듯하지만 공허한가 등이다. 입문 과정인 ‘레시피랩’에서는 생성형 AI와 프롬프트의 기본 원리, 창작 목적에 맞는 프롬프트 설계, 결과 비교와 개선, 개인 작업에 적용 가능한 프롬프트 레시피 구성을 다룬다. 심화 과정인 ‘브루어리랩’에서는 텍스트, 이미지, 코드, 비주얼 업스케일링 등 각자의 창작 주제를 바탕으로 더 깊은 실험을 이어간다. 여기서 레시피는 고정된 정답이 아니라 다시 끓이고 발효시키고 변형할 수 있는 공동의 실험식의 은유다. 참여자들은 매 회차 자신의 프롬프트와 작업일지를 남기고 동료들과 공유한다. 이 기록들은 검토를 거쳐 ‘아트 프롬프트 위키’에 등록된다. 아트 프롬프트 위키는 프로그램을 통해 생성된 창작 성과와 과정을 공개·축적하는 오픈 아카이브다.
오픈 프롬프트 커뮤니티의 공유지에서는 생성인공지능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자주 당황하고, 실수하고, 우회하고, 서로에 기대어 겨우 다음 해법을 찾아내는지 정직하게 기록하려 한다. 하나의 완벽한 프롬프트보다 수십 개의 실패한 프롬프트가 더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다. 빠른 기술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느리지만 중요한 일은, 각자의 시행착오를 사유화하지 않고 공동의 언어로 바꾸는 일이다.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리는 혼자 빨라지기보다 함께 느려질 필요가 있다. 함께 묻고, 함께 실패하고 기록하고 만들어야 한다. AI 시대의 민주주의가 입력창에서도 시작된다면, 그 입력창 앞에 모이는 인간의 공동 지혜야말로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열어야 할 커먼즈인 것이다.
오영진(2026 아트코리아랩 오픈 프롬프트 커뮤니티 총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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