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결과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감각을 묻다

AI가 이미지를 만들고 글을 쓰며 인간의 움직임까지 학습하는 시대, 창작자의 몸은 작업 안에 어떻게 남을 수 있을까요? 7월 28일 아트코리아랩 아고라에서 열린 포스트모템 07에서는 뉴미디어 아티스트 황선정 작가와 권정원 모더레이터가 **‘AI와 생태적 감각들: 관계와 생성, 몸 그리고 포스트휴먼’**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황선정 작가가 생성형 AI와 이미지 알고리즘을 적극적으로 실험해 온 작업의 계보를 따라가며,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오히려 사라지는 추상성과 시적 감각을 짚었습니다. 현재의 AI 기술이 무엇을 포착시키면서 무엇을 탈락시키는지, 기술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감각 또한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깊게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토론과 질의응답에서는 인간의 움직임을 학습하는 AI가 어떤 몸을 기준으로 삼는지, 창작자는 AI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AI 시대에 인간 창작자에게 남는 자리는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기술의 번역 과정에서 아직 포착되지 않거나 다른 형태로 바뀌는 감각과 판단, 기계의 속도에 쉽게 수렴되지 않으려는 작가의 태도, 그리고 몸과 작업을 논의한 현장이었습니다.

20260728_190548.jpg

1부|황선정 작가의 이야기

매체와 자원의 경계를 두지 않고 작품세계를 조직해나가는 황선정 작가의 작품은 (작가 스스로 좋아한다 밝힌) 오일러 등식과 닮아있었습니다. 시가 프롬프트가 되어 이미지로 변화하고 때로는 작곡, 다시 설치와 퍼포먼스, 그리고 실시간 오디오 비주얼 공연으로 모이고 흩어지길 반복합니다. 복소평면(complex plane)에 펼쳐진 나선과 원이 한데 모이듯, 작품 안에서 작가는 단일한 정체성이 아닌 중첩된 상태이자 존재로서의 정체성의 궤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1. 선명함이 지워버린 것

2021년부터 2023년까지 VQGAN과 스테이블 디퓨전으로 만든 이미지들은 낮은 해상도와 정사각형 프레임을 기본으로 했습니다. 인물을 만들려고 해도 아시아인의 얼굴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고, 손가락이 다섯 개가 아닌 이미지도 흔했습니다. 이 불완전함은 단순한 **‘할루시네이션’**이나 수정해야 할 오류가 아니었습니다. 손가락이 여섯 개인 인물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 역시 당시 기술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결과로 작업 안에 남았습니다.

자신이 쓴 시의 단어와 문장을 프롬프트로 변주하며 균사체의 네트워크, 생태적으로 이동하는 감각, 서로 연결된 세계를 추상적인 이미지로 옮겼습니다. 당시 생성형 AI는 원하는 결과를 정확히 내놓지 못했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 때문에 작가의 사유와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됐습니다. 혼자 학습하며 당시의 AI로는 할 수 없었던 한계를 넘어 서는 시도들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이후 AI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이제 누구나 ChatGPT에 몇 문장을 입력해 원하는 구도와 분위기의 이미지를 즉시 얻을 수 있습니다.

“결과가 곧바로 확정될수록 제가 개입하고 관계 맺을 수 있는 자리가 줄어들었어요. 오히려 당시의 추상적이고 완결되지 않은 이미지가 더 많은 방향을 열어주었고, 제 시적 작업 방식과도 더 깊이 연결된다고 느꼈습니다.” -황선정

기술이 선명해질수록 작가에게서 사라진 것은 이미지의 오류가 아니라 작가가 추구하는 추상성, 시적 연결감,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벗어날 가능성이었습니다. 현재 황선정 작가에게 AI를 사용하는 방식은 작업과 시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영상 작업에서는 생성이미지와 기술적 실험을 계속 이어가고 있으며, 몸이 직접 개입하는 설치와 퍼포먼스에서는 이미지가 감각을 먼저 확정하지 않도록 사용 방식과 거리를 조정해오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를 단순한 발전이나 진화가 아니라, 여러 가능성이 하나의 그럴듯한 결과로 수렴하는 ‘붕괴’일 수도 있다 진단합니다. 각각의 결과물은 이전보다 완성도 높게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슷한 언어와 이미지가 반복되는 역설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AI가 제시한 결과를 수정하다가 결국 자신이 처음부터 다시 만들게 되는 일도 반복됐습니다. 편리함을 기대하며 사용한 기술이 창작자의 개입을 줄여주는 대신, 오히려 자기 감각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만들었습니다.

#2. 기계의 추론이 감각인가

밤새 프롬프팅을 반복하던 시기, 자신의 언어와 사고방식이 **“기계의 가독성에 맞춰 깎여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AI가 알아듣기 쉬운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명확하게 정리하며, 기계가 요구하는 형식에 자신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자신이 쓰던 시의 리듬과 모호함은 점차 사라졌습니다.

“프롬프트와 나의 시, 나의 감각은 무엇이 다르기에 나는 ‘나’로 존재하는가.” -황선정

이 질문 끝에서 작가가 을 기술과 작업의 인식 조건으로 다시 전면화하였습니다.

몸은 세계와 직접 접촉하며 온도와 냄새, 소리와 움직임을 받아들입니다. 같은 장소에서도 각자가 살아온 시간과 관계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고, 언어로 설명하기 전에 이미 무엇인가를 감지합니다. 작가에게 몸은 기술에 입력되는 하나의 데이터가 아니라, 세계와 관계 맺으며 계속 변화하는 인터페이스였습니다.

이러한 고민은 2023년 전시로 이어졌습니다.

작가는 AI 생성 이미지를 작업에서 빼고, 여러 나라에서 직접 채집한 필드 레코딩과 자신이 만든 사운드로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관객에게 지금 이 순간의 소리와 감각을 느껴보도록 안내하는 명상적 오디오 가이드도 함께 배치했습니다.